선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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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뜯는 사람들

5: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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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풍 병자에게 좋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픈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픈 친구를 들것에 넣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집 안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고, 밖에도 많은 사람이 있어서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지붕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은 기와를 벗겼다고 했습니다. 기와였다면 천장이 더 단단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친구들은 기와를 벗기고, 구멍을 내고, 아픈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상상하지 않았던 말씀이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이 아니라 [죄]를 거론하셨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그곳에는 논쟁을 좋아하는 신학자들이 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 율법 교사들, 서기관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뭐라고? 죄를 용서해준다? 감히 하나님을 빙자하다니?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해 줄 수 있단 말이냐?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속 생각을 아셨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나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속마음을 들켰던 그들은 순간 얼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 중풍 병자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오늘 놀라운 일을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신성모독을 거론했던 바리새인, 율법 교사, 서기관들도 그 기적을 보고 입을 열지 못한 채 조용히 물러갔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인공이 될만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었습니다. 중풍 병자도 있고, 그의 친구들도 있고, 바리새인, 율법 교사,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무대 밑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중풍 병자의 친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의 믿음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오늘 본문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그들의 믿음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이 땅에서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세가 예수님께 있었음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23절) 예수님은 A와 B를 제시하시면서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함정이 있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직관적으로 보고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A냐? B냐? 예수님은 곧바로 그 답을 주셨습니다.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 보다 네 죄를 용서하노라.”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질문과 비슷한 상황이 또 하나 숨겨져 있었습니다. “지붕을 뜯는 일이 쉬우냐? 사람 속에 있는 생각을 알아내는 일이 쉬우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이 어렵습니까? 지붕 뜯는 일이 어렵습니까?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알아내는 것이 어렵습니까? 당연히 후자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그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 됩니다. 네 친구의 믿음을 주목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한다면 엉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병 고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쪽에서 출발을 해보면 의외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쪽에서 보면 지붕을 뜯었던 그 친구들은 예수님께서 불러내신 사람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등장은 이 이야기의 절정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그 절정이란 중풍 병자의 치유가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의 권세를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동원된 그들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나의 작음도 쓰임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 율법 교사들,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많이 배운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했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품지 못하는 학문이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배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하셨습니다. (잠9:1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불행이었습니다.

 

정리합니다. 우리는 누구이어야만 합니까? 예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24시간 대기조 요원들이 되어야 합니다. 병자를 들것에 실어서 옮기라고 하시면 그 말씀대로 하고, 지붕을 뜯으라 하시면 그 말씀대로 실행하면 됩니다. 내 시간, 내 재능, 내 재물, 내 회사, 내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다 드리는 것입니다.

 

윌리암 캐리(William Carrey:1761-1834)는 1793년에 인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1788-1850)은 1813년에 미얀마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1813-1873)은 1841년에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 (Underwood: 1859-1916), 아펜젤러 (Appenzellwer: 1858-1902)가 있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설령 우리가 그들이 누구였는 잘 모른다 할지라도 그들의 헌신과 희생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루비 켄드릭(Lubye Kendrick:1887-1908)은 21살 처녀의 몸으로 조선에 와서 선교하다가 도착한 지 9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그의 묘가 있습니다. 그녀의 비문에서 그녀가 조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진다면, 그 모든 생명을 한국 사람들에게 줄 것입니다.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한국 한센인을 섬기다가 영양실조로 죽은 서서평 (Elisabeth Sheppping:1880-1934) 선교사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인도를, 미얀마를, 아프리카를, 조선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동원하셔서 그 땅끝으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였느냐? 한 마디로 말해보라고 하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분들은 [지붕 뜯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00년 전, 100년 전, 가족과 고향과 본토를 떠나 질병과 위험과 순교가 있는 땅끝까지 건너가서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고,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일을 해냈던, 그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부르시고 동원하셨던 [지붕 뜯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중풍 병자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땅끝으로 가서 지붕을 뜯을 수 있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동원하시고 계십니다. 그 다음 제자가 바로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마가복음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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